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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8억 3천만유로(한화 약 2조4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빅딜로 미국의 마이클 코어스가 명품 베르사체를 인수했다. 마이클 코어스는 미국 핸드백 메이커로 패션그룹이라는데 유럽진출 목표로 인수한것 같다. 1997년 잔니 베르사체가 살해당한후 여동생 도나텔라가 운영하였는데 인수가 됐어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는다고 한다.


베르사체는 그리스 신화속 메두사 머리로고를 사용하는 회사이다. 화려한 색감과 대담한 문양의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을 많이 선보였다.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 : Gianni Versace, 1946~1997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대담하고 화려한 컬러감의 이브닝 웨어로 80~90년대를 이끌어간 중요한 패션디자이너중 한명으로 디자인 하우스의 패션은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함, 관능미, 사치, 황홀감, 쾌락주의로 표현되고 있다.


뛰어난 입체 재단 기술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살린 간결한 라인과 베르사체의 드레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비잔틴, 르네상스, 바로크·로코코 예술, 현대 미술들이 생생하게 표현된 화려한 컬러의 고급 이탈리아산 프린트 원단, 체인 메시(chain mesh), 가죽, PVC소재들과 함께 어우러져 남부 이탈리아 특유의 우아함과 관능미, 정열을 동시에 표현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화려한 소비의 시대에 베르사체의 의상은 성적 욕망, 아름다움과 부유함를 뽐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과시욕을 만족시키며 ‘럭셔리한 퇴폐’라고 불렸으며, 착용자의 자신감, 성공의 표식이 되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같은 유명 인사들과 왕족들을 위한 디자이너, 거리 문화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산업에 활력과 예술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기억되고 10년도 안 되어 그는 8억 7백만달러의 가치가 있는 제국을 건설하고 사후에는 여동생이 관리하게 되었다.


잔니는 1946년 12월 2일 이탈리아 남부의 컬러브리아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되었다. 어머니 프란체스카는 재봉사였고 아버지 안토니오 베르사체는 세일즈맨으로 부모의 조합이 어찌보면 패션과 비지니스를 타고난게 아니였을까?


어려서부터 재봉에 소질이 있었고 디자인스케치보다 옷의 구조를 배우고 만들었기에 재단사로서의 재능도 남달랐을것 같다.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하고 어머니 의상실에서 본격적으로 견습을 시작으로 쿠튀르(바느질, 의상점) 장식 기법과 소재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컬러브리아의 작업실에서는 어머니에게 입체 재단과 같은 재단 기법을 배우고, 매장에서는 손님에게 판매하는 일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등 이 시기 그는 패션 비즈니스를 위해 필요한 기초를 탄탄히 배웠다.



잔니의 도발적이고 대담한 디자인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는 유명인들에게만 옷을 제공하기 원한다.”는 거침없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를 원하는 팝 스타, 영화 배우와 같은 유명인들에게 잔니의 의상은 지나친 노출과 도발로 저속하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기는 했지만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완벽한 의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잔니 베르사체는 1년 4번의 패션쇼만 가지고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365일 파파라치의 카메라와 대중의 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유명인사 즉 팝 스타, 영화 배우들이 중요한 패션의 선도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유명 인사들에게 그의 디자인을 입히기 시작



유명 연예인인 엘튼존, 마돈나, 실베스타 스탤론, 엘리자베스테일러, 스팅, 티나터너,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코트니 러브, 할리베리등 시대의 연예인들의 레드카펫 의상 제공으로 마케팅으로 뛰어난것을 알 수 있다.


베르사체 한벌의 드레스로 인생이 바뀐 스타 이야기도 있는데 엘리자베스 헐리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휴 그랜트가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 베르사체의 노골적이고 도발적인 검은색 안전핀 이브닝 드레스를입고 참석후 센세이션을 일으켜 무명배우였던 그녀를 스타덤에 올리게 되었다. 그 후 화장품 회사 광고 계약도 체결하고 새로운 섹시심볼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의 패션쇼에 맨 앞줄은 항상 유명인사들로 가득차고 패션쇼는 슈퍼모델들로 구성되었다. 마케팅적인 전략이 눈에 띄는건 패션쇼를 이용하여 스타와 슈퍼모델을 활용한 홍보전략은 각종 매체를 패션계로 끌어들이고 패션에 관심 갖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옷들만큼 화려한 생활을 하였다. 수많은 예술작품과 화려한 가구로 수놓았으며 유명인사들에게 수천만원대의 드레스 선물은 기본이고 초대하여 파티를 열며 지내던 화려한 인생이었지만 갑자기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97년 7월 15일 자택 앞에서 앤드루 커내넌에게 총을 맞아 50세 나이에 사망하게 된다. 거기다 범인은 8일 후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죽음에 관한 단서는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의 유산의 대부분은 동생 도나텔라의 딸 조카 알레그라에게 남겼다. 경영은 형 산토와 동생 도나텔라가 다지안 하우스를 이끌었고 2018년에는 빅딜로 매각 시켰다.


사실상 잔니 베르사체의 죽음으로 형제들이 이끌어 왔지만 사치가 미덕이던 화려한 소비와 욕망의 시대에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라는 시대는 이제는 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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